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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랑의, 글> 1월 / 새 시대와 글


2023년

1월





* <차예랑의, 글>은 구독자에게 한 달에 열두 편의 글을 발송하는 메일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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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첫 문장

    1. 이름 

김은 지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맞은편 의자를 꺼내 앉으며 며칠 전, 이름을 빼앗겼다고 했다. 

    2. 기차 풍경

한낮의 기차 안, 기차에 오른 사람들이 기차 안 자욱이 깔린 사람들의 낮은 숨소리와 목소리를 지나 통로를 걷는다. 


    3. 상미는 살아 있다

나는 '상미'의 출간 이후에도 여전히 엄마에게 매섭고 사나운 내 자신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며, 점점 더 스스로를 놓아 버리는 내 자신과 그 곁의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이리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삶이 거짓된 것처럼 느껴졌다.



* <차예랑의, 글>에는 글마다 추천곡이 있습니다.

추천곡

  • Sicilienne In E Flat Major- Arr. Hazell / Sheku Kanneh-Mason, Members Of The BBC National Of Wales, Members of the English Chamber Orchestra, Pilharmonia Orchestra & Christopher Warren-Green
  • Loom - piano reworks / Ólafur Arnalds & Eydís Evensen
  • In the World of My Breath / Aska Matsumiya

 

 

    예랑의 말

** '풍경 시리즈'에 대하여

풍경 시리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이 작업에는, 오로지 장면의 나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스스로 탄생한다는 것을 믿는 저의 믿음과, 독자 분들이 상상을 통해 글을 향유할 때에 그 안에서 보다 깊은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는 저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풍경 시리즈의 목표는 글쓴이가 최대한 사라지는 것입니다. 글에서 글쓴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최종적으로 저의 주관이 거의 사라지고 우리를 강렬히 사로잡는 어떠한 풍경만을 남기는 것이 저의 풍경 시리즈의 목표입니다. 


- '상미는 살아 있다'에 대하여 중에서   

참 부끄러운 삶입니다. 그러나 삶이 부지런히 글의 뒤를 쫓고 글이 부지런히 삶의 뒤를 쫓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가 마주설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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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첫 문장


    4. 개의 길 

그곳을 지날 때면 매번 수십 마리의 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앉아서 무심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곳을 개의 길이라고 불렀다. 

    5. 서울 풍경 / 버스 정류장

빌딩 숲 어느 중앙 분리대 화단에 한 아름 심긴 황금빛 갈대가 흔들린다. 한 그루의 높은 소나무 속으로 까치들이 날아들고, 날아간다. 

    6. 소설가의 일기

어느 날 나는 소설가의 일기를 발견했다. 5월 : 미완의 기쁨 



추천곡

  • Meeting Krishna / Mychael Danna
  • Guiding Light / Alexis Ffrench
  • Garmoshka / The Knights, Johnny Gandelsman & Clin Jacobsen




    예랑의 말

- '개의 길'에 대하여 중에서

'개의 길'은 저에게 수필과 소설의 접경지 같은 글이자 항상 숙제 같은 글입니다. 그곳은, 언제나 소설을 써야 한다는 집념과 부담 중에 만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들의 얼굴은 마치 제게 어떠한 소설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 '서울 풍경 버스 정류장'메일 중에서

독자 분들 덕분에, 그간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글의 즐거움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소설가의 일기' 중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글, 그것뿐이었다. 이것은 절망인가. 아니면,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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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첫 문장


    7. 서울 풍경 / 지하철 풍속도

화려한 귤색 등산복을 입고 빨간색 모자를 쓴 노년의 남자가 오른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본다. 고개를 숙인 남자의 모습이 스크린 도어에 비친다.

    8. 9살

내가 항상 눈여겨보던 비범한 어린이가 있다. 나는 그 어린이의 삶의 과정을 오래도록 지켜보며 그녀의 말에서 종종, 미처 깨닫지 못한 지혜를 얻곤 했다. 그래서 그 어린이를 첫 인터뷰이이자 어린이 대표로 나의 글에 초대했다.  

    9. 발소리

-0년

1월 말 어느 늦은 밤, 저 복도 끝에서부터 바삐 그러나 소리 죽여 뛰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구두를 신은 발소리가 조심스레 바삐 뛰다가 어느 집 앞에서 걸음을 늦춘다. 




추천곡

  • Dust (feat. Maya De Vitry) / John Mailander
  • Bibo no Aozora / Ryuichi Sakamoto
  • 책 / 최백호

 


    예랑의 말

- '글'에 대하여 중에서

독자 분들의 얼굴이 혹은 모습이 하나의 문장이 된다면 그 문장은 어떤 문장일까요? 글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 '9살' 중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어른은 몇 살일까?" 
그러자 그녀는 '스물두 살'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이 굉장히 의아해 그녀에게 물었다. "왜 스무 살도 아니고 스물두 살이야?" 그러자 그녀는 답했다. "스무 살은 법적으로 성인이 딱 됐을 때잖아요. 성인이니까 적응 기간도 필요하고, 일하는 것도 알아봐야 하고 하니까. 공식적으로 자리가 잡힌 성인은 스물두 살이 아닐까요?"

...

 내가 그녀에게 "너에게 특기가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아직까지 발굴하지 못했어요"라고 그녀가 답했다. 그러면서 굉장한 말을 했다.

"제 보석은 어딘가에는 묻혀 있겠죠?"'


** '어린이 인터뷰'에 대하여 

사람의 삶 속에 담긴 철학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글로 남기는 작업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어린이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 철학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매우 중요한 것들을 알려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지혜가 우리의 삶을 다시금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 작은 연하장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기를, 군중 속에서도 외롭지 않기를, 가족 안에서도 외롭지 않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차예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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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첫 문장

    10. 안경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에게 빵과 음료를 나누어 주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안'의 얼굴은 분명 잊지 못할 얼굴이었다. 

    11. 창

깊은 밤.

거센 한기의 소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온 세상을 휩쓴다.

    12. 열두 번째 글

서둘러 어느 건물에 들어가니 그는 미리 와서 어딘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내가 자리에 채 앉기도 전부터 급하게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내 말 잘 들어라, 잘 들어. 네가 못 가진 것이 무엇이냐. 네 문장, 네 사유, 젊음. 너는 아직 무엇이든 쓸 수 있다. 너는 잘 할 수 있어. 글 써라." 나는 의자에 깊숙이 앉으며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저 이제 막 왔는 걸요." 그러나 그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내 말 잘 새겨들어라. 너는 무엇이든 쓸 수 있어. 그것을 알아야 돼." 나는 그 말에 "네."라고 답했다. 그는 그제야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추천곡

  • This Place Is a Shelter / Ólafur Arnalds
  • Stranger: VII. My Love / Nicholas Phan & Brooklyn Rider
  • Last Days / Yasushi Yoshida



    예랑의 말

- '열두 번째 글' 중에서

글은 나에게 분명, 가장 틀림없는 고통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과거는, 나의 옷자락을 잡는 글로부터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돌아서고 또 돌아서는 무정의 과거였다. 그러나 나는 결국 운명에 마지못해 책을 한 권 썼다. ... 되풀이되는 대화 속에 나는 결국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제게 정말로 그런 가능성이 보이세요?" 그것은, 내가 결국 어느 때인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그 질문 속에 어떤 어렴풋한 희망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짙은 절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럼."이라고 답했다. 

한참 뒤 그는 내게 말했다. "글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완전히 도망쳐라. 아예 그만두어라." 잠깐의 침묵 끝에 그는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보니 너는 글에서 도망칠 수가 없어. 너도 그걸 알지 않냐. 그러면 그냥 써라. 피할 생각하지 마라. 너는 피할 수가 없어."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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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의 글을 마치며

'글을 향한 저의 깊은 미움이 실은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

제게 <차예랑의, 글>은 수많은 사념과 우울의 진창에 빠져 도무지 일어서지 못하는 제 자신을 살리기 위한 구명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글을 생각할 때만큼은 사념 속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ye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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